남자들은 보통 아내에게 시달린다고 한다. 이때 아내는 마누라로 격하된다. 물론 남자들끼리 얘기할 때만.
그 사달림이 필드까지 연장된다면 이건 '죽음'이다. 즉 아내와 골프를 함께 한다면, 골프가 재미없다는 표현은 아주 점잖은 편이다.

남자 골퍼들에게 가장 재미없는 골프를 했을 때가 언제냐고 물으면 십중팔구, 아내와 골프를 하거나 아내 친구 등 여성 3명과 함께 했을 때라고 답한다. 이 글을 읽을지도 모르는 여성들에겐 대단히 죄송.

모처럼 장타를 날려 롱홀에서 투온을 하고 버디나 이글 퍼팅을 해도 여성들은 스코어에 관심 없다. 그저 한다는 말이 나이스 퍼팅이란다. 이 말도 감지덕지, 이글 패 같은 얘기는 꿈도 꾸지 말라.

그리고 '신사도'를 발휘해 오직 마나님들 수발에 정성을 쏟아야 한다. 덥고 목마르다고 '감히' 그늘집에서 맥주라도 한 캔 먹는다면 간 큰 사람이다. 동네 슈퍼에서는 얼만데 하는 구시렁구시렁에 뒤통수가 가려울 것이다.

두 번째로 재미없는 골프는 접대를 위해 스폰서 대표자격으로 라운드 할 때. 잘쳐야 하는지 못 쳐야하는지 우선 고민이 많다. 소신 같은 건 아예 홀컵에 묻어야 한다. 동반 접대 받는 분들의 샷 하나 하나에 신경 쓰면서 굿샷일 땐 꼬박꼬박 굿샷, 나이스 등을 외치며 찬사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타이밍 놓치면 그날 접대는 없었던 일이 될 수도 있다.

멀리건과 기브 퍼팅을 주는 것도 분위기 파악을 잘 하면서 적당히 캐디에게 팁과 눈치를 살피며 조절해야 한다. 멀리건은 안된다는 캐디와 실랑이라도 하면 큰일이다.
 
라운드 끝나 캐디 피를 내는 것부터 그린피, 식음료 비용은 그렇다쳐도 이어지는 식사 대접 그리고 음주 가무까지…. 그날 하루는 완전히 도우미 신세로 고달픈 날이다. 골프가 이렇게 재미 없을 수도 있다니….

세 번째는 동반자들과 라운드를 나가기만 하면 주머니가 다 털리는 라운드이다. 비록 아내에게는 내기골프해서 땄다며 생돈까지 내놓아야 하는 아픔은 차라리 '폼'이라도 잡는다고 하지만 잃은 돈(결국 내 돈)이 라운드 후 단체 식사비용으로 쓰이면서 동반자들의 무용담이나 들어주고 본인은 정작 한마디도 끼지 못하는 서글픔은 또 어쩌랴. 정말 하수의 서러움을 톡톡히 느끼는 비애를 맛보게 된다. 아마도 내 지갑은 먼저 본 사람이 임자인가보다. 

그러면 재미 있는 골프에 앞서, 골프가 잘되는 날은 언제인가.

먼저 박세리 얘기를 들어보자. 언젠가 박세리는 골프가 가장 잘될 때를, 샷감과 컨디션이 좋을때 또는 긴장감이 넘치는 박빙의 승부일 때가 아니라 몸이 나른하고 졸릴 때라고 했다.

한 선배프로가 경기에 나가야하는데 전날 밤 초상집에서 밤을 꼬박 샜다.  이튿날 18홀 라운드나 제대로 돌수 있을지 걱정했지만 비몽사몽 경기를 치른 결과 상위권 성적으로 챔피언 조에 편성됐다. 그러나 못다 잔 잠까지 푹 자고 나온 그 다음날에는 무참하게 망가졌다. 우승 조에서 긴장을 많이 한 탓에 힘이 들어가서 샷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재미 있는 골프는 어떤 때일까.

단연 단골 호적수와의 '결투'다. 호적수가 공을 치러 가자고 하면 자다가도 귀가 솔깃하고 며칠 전부터 가슴이 설렌다.

그동안 연습장에서 열심히 갈고 닦은 샷이 딱딱 맞아 떨어지면 콧노래가 저절로 나온다. 통쾌한 기분마저 들 것이다. 더군다나 동창회에 골프모임에 나가서 실력발휘를 하면 최소한 6개월은 동창들에게 강자로 각인될 것이다.

골프는 이처럼 동반자들에 따라 재미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재미없는 골프는 일단 긴장감이 없다. 그런데 부담감이 없다보니 스코어는 의외로 잘나온다. 이 때를 베스트 스코어 한번 내보는 찬스로, 그리고 연습장에서 완성하지 못한 새로운 타법을 필드에서 시험해 보는 기회로 삼으면 어떨까. 마음 먹기 달렸다. 꿩 대신 닭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그래서 골프는 재미를 떠나 저 푸른 초원 위에서 맑고 상쾌한 공기를 마시는 것 자체만 해도 축복 아닌가. 그저 감지덕지할 일이다.

 

 [글= 최영수 ㈜야디지코리아 회장 / 정리= 이뉴스투데이 엄정권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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