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뉴스투데이 박재붕 기자] 국민연금이 기업 주총에서 의결권을 행사하는 빈도나 안건에 대한 영향력이 갈수록 높아지면서 기업경영 자유를 지나치게 침해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4일 국민연금은 동아제약의 지주회사 전환을 반대하기로 정했다.
 
동아제약의 핵심사업 중 하나인 박카스를 지주회사 체제에서 신설되는 비상장 회사로 분할하면 주주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국민연금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위원장 권종호 건국대 교수)는 이날 "비상장사로 분리해 폐쇄화하면 동아제약의 수익 창출원인 박카스와 일반의약품 수익이 주주들에게 균등하게 배분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데 의견이 모였다"며 "주주가치를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해 반대의결권을 행사키로 했다"고 밝혔다.
 
표면적으로는 주주가치를 내세웠지만, 이면에는 동아제약이 박카스 등 핵심사업을 비상장화해 대주주 2세에게 편법승계 하려한다는 비판적 여론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또 국민연금측이 경제민주화 정책을 표방한 새 정부에 대한 눈치보기(?)에 벌써부터 들어갔다는 분석도 가능하다.
 
지난해 SK 최태원 회장의 SK하이닉스 사내이사 선임 안건에 대해 '중립' 의견을 내놓아 소극적인 주주권 행사라는 비난을 거세게 받았던 의결권행사전문위원회가 1년도 채 안된 지금 이 시점에서는 태도가 확 바뀐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경제민주화의 일환으로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강화를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더욱이 새 정부가 출범하면 국민연금의 '입김'은 더욱 거세질 가능성이 높다는 게 더 문제다.
국민연금은 기업들의 보유 지분을 점차 확대해오고 있다.
 
지난해 10월말 기준으로 국내 주식에 68조원을 투자하고 있고, 이는 지난 2009년 말의 36조원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난 규모다.
 
작년 상반기 기준으로 국민연금이 지분 5%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상장 기업수는총 172개.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지분 9% 이상을 보유하고 있는 곳은 56개, 10대 그룹 상장사에 대한 평균 보유지분율도 7.70%에 달한다.
 
특히 제일모직, 포스코 등의 최대주주이고, 국내 시가총액 1, 2위인 삼성전자와 현대차는 모두 2대 주주다.
 
의결권 행사 안건의 수위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국민연금이 2011년까지 주총에서 반대 의결권을 행사한 비율은 5~8%로 한 자릿수에 그쳤으나 지난해에는 17%로 높아졌다.
 
반대 의결권 행사를 항목별로 보면 정관변경이 291건으로 전체의 66.7%를 차지했다.  이사 및 감사선임은 123건(28.2%)으로 뒤를 이었다.
 
이번 국민연금의 동아제약 결정에 대해 시민단체는 경제민주화를 강화하는 조치라며 환영하지만, 의결권 행사의 부작용을 염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특히 기업의 가치와 주가를 평가ㆍ예측하는 증권사 연구원들은 동아제약의 지주사 전환에 대해 경영권이 강화된다는 점을 긍정 평가하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 대목이다. 
 
동아제약 강신호 회장은 차남인 강문석 전 동아제약 부사장과 2004년, 2007년에 걸쳐 2차례에 걸쳐 경영권 분쟁을 겪었다.
 
이후 최대주주 및 특수관계인의 지분이 우선주를 포함해 14%에 그쳐 적대적 인수합병에 대한 얘기가 꾸준히 제기돼 왔다. 
 
현재 동아제약의 지분구조는 강신호 회장(특수관계인 포함)이 지분 14%로 최대주주이며, 이어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9.9%), 국민연금(9.5%), 한미약품(8.7%), 오츠카제약(7.9%), 우리사주(6.7%), 녹십자(4.2%) 등이 있다.
 
9.5%의 지분을 보유한 3대주주 국민연금이 반대표를 행사하면서 지주사 전환 계획을 둘러싼 논쟁이 벌어지게 된 셈이다.
 
이에대해 신한금융투자 A 연구원은 "지주사 전환을 통해 최대주주의 경영권이 강화될 전망이며 앞으로 우량 자회사를 상장하면 새로운 사업의 투자자금도 마련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신증권 관계자도 "동아제약은 기업 분할을 통해 기업지배구조의 투명성, 경영 안전성 증대는 물론 사업별 성장성을 높이고 신규사업 리스크를 분산시킬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동아제약의 분할(안)대로 지주회사 '동아쏘시오홀딩스' 아래 전문의약품 전문 사업회사 '동아에스티'가 신설되면 주가 불안요소인 최대주주 지분율을 올릴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도 지주회사 전환은 대주주의 취약한 지분구조를 보완, 적대적 인수합병(M&A)으로부터 회사를 보호하는 제도로 이용되고 있다.
 
지주사와 사업 자회사가 분할된 뒤 주식교환으로 지주사 지분을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동양증권 B연구원은 "최대주주 지분율이 지금보다 높아진 가운데 사업부가 여러 회사로 분할되면 종종 제기되는 M&A 실현 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라며 "분할안으로 주주 가치가 최대화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비근한 예로 동아제약이 지주사 전환 계획을 발표한 지난해 10월23일 이후 동아제약 주가는 현재까지 약 23.41% 올랐다.
 
그러나 국민연금이 분할안 반대 의견을 밝힌 24일 하루동안 주가는 4.49% 급락했다.
 
한화증권 관계자는 "사업부를 분리하면 경영 효율화가 가능해지고, 연구개발비를 지주회사에서 부담하게 돼 신설법인 동아에스티 수익성이 크게 개선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이와반대로 지주회사로 전환되면 최대주주가 2, 3세에게 회사를 물려주기가 유리해지는 것도 사실이다.
 
비상장 자회사는 지주회사의 이사회 결의만으로도 지배권을 제3자에게 넘길 수 있어 편법 상속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번 국민연금의 반대도 이 같은 편법 재산상속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담긴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동아제약은 시장의 이 같은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이미 지난 18일 “‘박카스 사업 양도 시 주총 특별결의를 요하도록 하겠다’는 내용을 오는 3월 열릴 정기주총에서 정관에 새로 넣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당시 동아제약은 “박카스 사업매각은 있을 수 없는 일임에도 일각의 우려가 있어 시장의견을 반영키로 했다”고 설명했다.
 
재계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에 보다 투명한 기준과 잣대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경총 한 관계자는 "국민의 재산을 책임지고 있는 국민연금이 과도한 의결권 행사로 기업의 본질적인 경영활동에 대해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이 우려된다"며 "국민연금은 단순 재무적 투자자로서의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도 "국민연금의 시총 비중이 커지는 만큼 대기업 등 상장사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것도 늘어나게 돼 있다"며 "의결권 행사와 관련한 논란을 피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잣대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결국, 국민연금이 국내 주식시장을 빠르게 잠식하는 상황에서 의결권을 언제, 어느 범위까지 행사할 지에 대한 명확한 가이드라인이 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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